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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홍룡사--경남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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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암 작성일13-08-16 14:40 조회2,11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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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에 젖은 절집, 경남 양산 천성산 홍롱사  

경남 양산을 세로로 가르는 천성산(922m). 최근 고속철도(KTX) 개통 문제로 진통을 겪으면서 ‘도롱뇽 소송’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산이다.

산의 원 이름은 원적산. 신라 때 원효대사를 따라나선 1000명의 대중이 그의 설법을 듣고 모두 보살이 됐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으로 불리게 됐다. 이 산에는 홍롱사(虹瀧寺)라는 작은 사찰이 있다. 양산 서쪽 상북면 대석마을 윗자락에 들어서 있는데. 일반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경을 품고 있다.

천성산 오르는 길은 깊어가는 가을색이 아직 남아 있다. 여름 내내 푸름을 자랑하던 잎들은 노랗고 붉은색의 잎을 떨구며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고 있다.

홍롱사는 그 뒤에 숨어 있다. 홍롱사는 작은 도량이지만 ‘무지개에 젖은 절집’이란 뜻의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가파른 계곡을 깎고 축대를 쌓아 대웅전을 만들고. 산신각을 세웠다. 양철지붕으로 된 허름한 요사채도 눈에 띈다. 그 앞에는 굵은 대나무가 푸름을 자랑한다. 이 모든 것이 절벽에 등을 기댄 채 늘어서 있어 절집으로 들어서는 반야교에서 보면 병풍처럼 보인다.

하지만 홍롱사의 진면목은 이제부터다. 반야교를 건너 오른쪽 수정문을 지나 산신각 뒤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별천지가 숨어 있다. 마치 호리병처럼 깎아지른 절벽이 삼면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한가운데로 폭포수가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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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롱폭포다. 높이는 약 15m. 하지만 최근 극심한 가뭄 때문에 거의 말라 떨어지는 물은 가는 줄기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주변에 두텁게 낀 이끼가 폭포의 위용을 표현해준다. 발밑에는 자그마한 인공 연못이 폭포수를 받아 모았고. 수면을 하늘에서 떨어진 노랗고 빨간잎이 빼곡히 덮고 있다.

폭포 바로 옆에는 자그마한 관음전이 조용히 앉아 있다. 오랜 세월 떨어지는 물을 보고 있었음에도 단아한 자태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다.

맑은 날이면 그 위로 무지개가 다리를 놓는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구름이 심술을 부려 선경의 진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되돌아 나오면 대웅전으로 향하는데 문득 수정문이 옷깃을 잡는다. 뒤돌아보니 기둥에 새겨진 선문답 같은 글귀가 가슴속을 파고 든다. ‘난외무풍죽유성(欄外無風竹有聲·난간 밖에는 바람이 없는데 대나무가 서걱거리고). 정전유월송무영(庭前有月松無影·정원에 달은 있는데 소나무의 그림자는 없네).’

대나무를 흔들어 깨운 것은 무엇이고. 소나무 그림자는 어디로 숨었을까. 산을 내려오는 내내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신라 문무왕(661~668년)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원효가 당나라 대중 1000명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해 창건했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설법을 들었다 하여 이름을 낙수사라고 하였다.

또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000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이 됐다고 해서 천성산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원효는 산 내에 89암자를 지어 1000명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 등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가 중창했다.

절 이름 홍롱은 폭포 이름에서 유래한다. 옛날 천룡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가는 길=경부고속국도 양산IC에서 나와 우회전. 언양 방면으로 약 2㎞ 가면 홍롱사로 향하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후 약 4㎞ 가다 대석마을을 지나면 매표소가 나온다. 절 아래 주차장이 있어 접근이 쉽다.
글쓴이-박상언 <separk@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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