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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개암사와 원효방--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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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암 작성일13-08-16 14:39 조회2,26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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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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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금산성의 원효방

부안 개암사와 울금바위

23번 국도를 따라가다 갑작스레 개암사 표지판을 만났다.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갑작스럽게 차를 꺾어 들어간다.
조금 더 들어가니 이번엔 저수지다. 전혀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서 마주한 저수지 풍경이 깜짝 선물 같다.

“개암사는 사람을 반겨주는 절 같다. 워낙 사람이 많이 찾는 내소사는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무심하지만, 개암사는 반가운 얼굴인 것 같다.”
누군가는 그렇게 내소사보다 개암사에 더 깊은 애정을 표시했다. 그의 말이 맞는 것인지 누렁이 한 마리가 반가이 맞아준다. 개암사에 들어서면 환영받는 손님같은 느낌을 받는다.

개암사로 들어가는 돌다리를 건너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있는 오솔길에서 한참 시간을 뺏긴다. 조용한 그 길에선 누렁이가 코를 땅에 묻고 사각사각 낙엽을 헤집는 소리, 딱다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 방금 나무에 앉아있던 새 한마리가 날아가면서 내는 바람 소리 같은 것들이 다 들린다.

방금까지 `앞 차가 느리게 간다’며 짜증을 냈던 사람도 이 오솔길에서 걸음이 저절로 느려질 듯하다. 사람의 성정은 그가 어떠한 곳에 사는가가 중요한가 보다. 이런 곳에 있으니 금세 맘이 순해진다.

하지만 개암사가 자리한 이곳 울금산은 역사적으로 치열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부흥운동을 벌이며 최후의 격전을 벌인 주류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울금산(우금산).
그 아래 개암사가 있다.

개암사는 백제 때 지어진 절이다.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피난와서 재건을 위한 왕궁터를 이곳에 잡았고 이후 900년이 흐른 백제 무왕 시기에 왕궁에서 절로 새롭게 태어났다.
개암사 절 마당에 들어서려면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한 칸 오를 때마다 절 안의 처마들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날렵한 처마선 위로 우금암으로도 불리는 울금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울금바위와 함께 보이는 대웅보전의 모습에 반한 사람들이 많지만, 지금은 기와를 얹는 공사를 하고 있어 아쉽게도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보물 제292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웅보전은 그 안에 더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 정면의 서까래 아래에는 두 개의 도깨비 얼굴이 붙어 있는데 용의 정면 얼굴을 담고 있다. 불단 위에는 다포 건물을 본뜬 화려한 닫집을 달았으며 닫집 안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뒤얽혀 물을 토해내는 모습의 목조각을 달았다.

개암사 뒤편으로 난 등산길을 따라 울금바위를 보러 오른다. 낙엽 밟는 소리가 듣기 좋다. 낙엽이 소복하게 싸인 그 길은 비밀스러운 곳으로 향하는 통로같은 느낌이다. 길이 곧은 편이라 멀리 앞서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꽤 오래 눈으로 좇을 수 있다. 30분 정도 그렇게 낙엽과 벗삼아 길을 가면 백제 항전군 지휘부가 최후를 맞았다는 울금바위가 있는 동굴에 이른다.

갑작스레 나타나는 울금바위의 위압적인 규모 앞에서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울금산성에서 백제유민들이 나당 연합군을 맞이해 최후의 항전을 벌였다고 하니, 그 숙연함도 괜한 것은 아닌 듯 싶다.

울금바위에는 세 개의 굴이 있는데 가장 큰 굴은 백제말기 신라군과 전투할 때 백제군 복신장군의 지휘소였다 하여 복신굴이라고도 하고 또 원효대사의 수도처였다고 하여 원효방이라고도 불린다. 안쪽에는 옥천이라 불리는 석간수가 흐른다. 뒤쪽으로 기어올라 바위 정상에 오르면 호남평야와 서해바다가 한 눈에 보인다. 울금바위에서 보이는 것들이 아득해서 내가 참 작다.     ⓒ 전라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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