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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문화

통도사--경상도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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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효암 작성일13-08-16 14:39 조회2,34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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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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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불쑥 치솟는 화,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까.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에선가 이 같은 감정을 폭발시키게 된다. 사람에 따라 일정한 경향을 나타내고, 또 그것을 본인이 잘 알아도 통제하기 어렵다.

오늘, 산사의 밤을 보내며 원하지 않는 감정의 표출을 다스리는 방법을 생각한다.
양산 영축산(1050m) 입구의 불보사찰 통도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러나 이미 관광객의 왕래가 끊긴 저녁예불 때의 통도사 대웅전이나 새벽 어스름을 뚫고 세상으로 퍼지는 새벽예불 전 법고와 범종 소리를 경험한 이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주말 수련회나 여름 수련회, 일상적으로 참석 가능한 예불 등 조금 더 깊은 통도사를 느끼는 방법을 알아봤다.

화 가득한 가슴에 바람이 일다
아시겠지만 통도사 입구는 걸어야 제 맛이다. 차를 타고 가더라도 입구까지 내려왔다 올라가는 산책 일정을 넣을 만 하다. 영축산문과 영축총림, 영축산통도사와 천왕문 등 입구에서 절까지 가는 하나하나의 관문을 통과하는 느낌이 유장하다. 영축산이 흘러내리고, 계곡이 흘러내리는 지형 곁으로 산사 쪽 길은 오히려 조금씩 올라간다.

오후 5시, 사람들의 발길은 아쉽다. 사바세계로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특히 ‘진리에 이르는 문’이라는 ‘불이문’ 안에서는 더 그렇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금강계단과 그로 인해 본존불이 없는 대웅전이 그 안에 있고, 그 아래 비로자나불의 대광명전과 미륵불의 용화전, 관세음보살이 앉은 관음전 등이 위에서 아래로 자리를 잡았다. 1300여년 전 신라의 고찰은 중간에 건물을 새로 지었어도 외관에 역사가 담겨 있다.

종무소에서 포교국장 매물 스님을 만났다. 일정과 숙소를 안내했다. 수련회 소개도 간단히 했다. 오는 7월15일부터 40일간 여름수련법회가 있고, 중간 중간 일반인과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1박2일 혹은 2박3일 과정이 예정돼 있다.

불이문 밖으로 나오기 싫어
매월 둘째주 토요일의 철야참선법회와 첫째주의 신도 정기수련회도 함께 소개됐다.
짜인 일정이 아니더라도 예불 참석은 언제든 가능하고, 숙소가 필요할 때엔 연락(383-0010)을 먼저 해야 한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스님에게 한마디 여쭸다. “화를 참아내는 수행을 어떻게 하십니까?” 대뜸 스님은 “아이구, 저도 화는 잘 못 참아요”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
“욕심내고(貪), 성내고(震), 어리석은(痴) 게 사람들이 가진 삼독이라 하잖아요. 근데 나머지 둘은 그런대로 다스리겠는데 ‘성냄’은 참 다스리기가 어려워요. 스님들도 가장 힘들어하죠.” “불경이나 예법의 종류에 특별히 화나 분노를 다스리는 내용은 없어요. 그냥 진리 자체를 깨침으로써 화낼 이유를 없애는 거죠. 수행이 어차피 자신을 바라보는 것 아닙니까. 근데 화를 잘 내는 모양이죠?”

오후 6시30분이면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이 시간에 절을 찾는 것도 좋다. 법고소리를 들으면 마치 내 앞에 말이 달리는 듯 하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두구두구…’ 음향을 스스로 살려서 들으시면 되려나.
소리는 목어의 뱃속을 가르고, 풍경을 울리고, 범종의 중심을 꿰뚫는다

아이구, 우리도 화 참기 어렵죠
강원에서 공부하는 스님의 무리가 범종각을 출발해 대웅전으로, 다시 예불이 열리는 설법전을 향한다.
아까 봤던 벽안의 사내 둘은 이미 설법전 안에서 정좌했다. 좌선의 자세가 어제오늘 쌓인 게 아니다.

그 옆에는 텁수룩한 머리에 수염까지 한 처사. 뒤에 들었더니 이들은 수행의 동지로, 몇년전 인도에서부터 틈틈이 동행하고 있다. 스페인의 사진작가와 이탈리안 불자, 리더 격의 한국인이었다.

예불 뒤 요사채에서 만난 이들에게 한참 생각해 “좌선하면서 어디에 생각을 모으십니까”하고 물었다. “생각을 비우는 거지요. 텅 빈 머리로 나를 바라보는 겁니다.”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거렸다. 알 듯 모를 듯 했고 더 이상 마땅히 할 말도 없었다. 자리를 곧 수습했다.

오후 6시30분 저녁예불 뒤나, 새벽 3시30분 새벽예불 뒤에 본존불 없는 대웅전에 자리를 잡으면 처음 으스스했던 느낌이 곧 평온해진다. 평화의 시간이다.
물론 천지에 소리 한 점 없는 것이 아니다. 강원으로 돌아간 스님들은 염불 연습을 하고, 한낮의 소음에 숨었던 소리가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저녁예불 뒤에 찾아온 평화
그렇게 살아나는 자연의 소리로 인해 마음은 오히려 위안을 받는다.
본존불 앉을 자리에는 텅빈 단상만 놓이고, 투명한 유리 뒤로 부처의 사리가 봉안된 사리탑이 희뿌옇게 바라보인다.
그래서 대웅전은 ‘적멸보궁’이다. 사리탑이 있는 금강계단에는 일년에 몇 번 큰 행사가 있을 때에만 들어갈 수 있다.

취침 전 해우소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에게 다짜고짜 다시 여쭸다. “출가하시기 전보다 화를 덜 내십니까?” “아, 그럼요. 어차피 마음 다스리는 공부를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마음속 근원에 있는 분노까지 단번에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공부를 하는 거지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딱 그 순간만 멈춰 보세요. 화내기 전에 자신을 다시 보는 거죠.”

그리고 몇 시간 뒤, 새벽예불을 끝낸 오전 5시 경이었다. 숙소 근처에 별도의 세면장이 없어 해우소에서 기자는 머리를 감았다. 그 순간 ‘덜컹’하고 화장실 문 하나가 열렸고, 그 안의 스님은 “물이 안으로 튀어 들어온다 아이가!” 하면서 크게 꾸지람을 했다.

“죄송합니다” 했지만 스님은 화를 풀지 않고, 아예 문을 열어놓고 용변을 봤다. 더 이상 말은 없었지만 부릅뜬 스님의 눈은 풀릴 줄 몰랐다.

글= 경남도민일보 이일균 기자 iglee2@domi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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